정초(鄭樵)의 통지(通志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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작성일 24-05-13 08:20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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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6세 때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당형인 정후(鄭厚)와 함께 협제산(夾漈山)에 초당(草堂)을 짓고 평생을 학문 토론과 저술로 보내 그를 협제선생이라 불렀다. 그리고 정초는 본래 서명을 ‘통사(通史)’라고 하였다가 뒤에 《통지》로 정하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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정초의 일생과 정초의 사학,통지에 관한 내용입니다. 자라서는 실학(實學)을 숭상하여 과거에 응시하지 않고 학문연구에 뜻을 두었다. 가definition 영향을 받아 어려서 독서를 좋아하였다.정초의통지 , 정초(鄭樵)의 통지(通志)기타레포트 ,
다.
1.정초의 사학
1)일생
정초(1104~1162)는 자가 어중(漁仲)으로 복건 흥화(興化, 현재 복건 보전(莆田)의 한 하층 관리의 집에서 태어났다. 두 책은 시간적으로 80년의 차이가 있으나 하나는 편년사로서, 또 하나는 기전사로 고금을 통관하는 사서였다. 정강 2년(1127)에 금군이 남하하여 변경을 점령하고 휘종과 홈종이 포로가 되어 붙잡혀가게 되자 정씨 형제는 시서(詩書)에만 빠져있을 수 없다 하여 하산…(생략(省略))순서
,기타,레포트
정초의 일생과 정초의 사학,통지에 관한 내용입니다. 다시말하면 송대에 일어난 통사의 바람이 정초의 《통지》에 와서 극치를 이룬 것이다.
정초(鄭樵)의 통지(通志)
정초의통지
송대사학은 ‘통(通)’을 구하는 데 특징이 있어 북송중기에 사마광의 《자치통감(資治痛鑑)》이 나왔고, 남송 초에 정초가 《통지》를 지어 더욱 뚜렷해졌다.


